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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㉜ 부부작가 김서경·김운성씨

입력 : 2016-03-02 11:28:00
수정 : 0000-00-00 00:00:00

예술을 뛰어 넘어 평화운동가로

 

 

초등 교과서에서도 사라진 일본군 위안부

 작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불가역적,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한일외교장관 협정 발표는 국민의 가슴에 불을 놓았다. “아니 10억엔에 할머니를 팔아버려?” “소녀상은 국민 성금으로 만든 것인데 누구 맘대로 철거한다는 거야?” 그날부터 지금껏 일본대사관앞 소녀상에는 소녀상을 지키는 청년들의 밤샘이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올 3월부터 초등 6학년이 배우게 될 교과서에는2014년 발행된 실험본 국정교과서에 실려 있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진은 물론 위안부라는 용어도 삭제되었다고 한다. 실험본에는 ‘전쟁터의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진 제목과 함께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되었다”라는 사진설명이 있었지만, 최종본에는 사진과 사진설명이 없어졌고,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고만 돼 있어 ‘위안부’와 ‘성 노예’라는 표현이 삭제된 것이다. 작년말 한일간 위안부 협상으로 교과서 내용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 아닌가?

 

강제 징용 흔적있는 일본에 ‘평화 디딤돌’ 놓으려

 부부작가는 막 일본에 다녀온 길이었다. 작년 9월 추석 무렵에 강제 징용되어 희생된 조선인(징용조선 72만여명) 중 115명의 유골이 70년 만에 귀향하여 경기 파주 용미리 서울시립 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평화디딤돌이라는 민간단체가 노력한 결과이다. 이 때도 두 작가가 납골당 조형물 디자인을 했다. 

 

그 인연을 이어 강제징용자가 계시거나 돌아가신 곳에 ‘평화 디딤돌’을 설치할 계획을 갖고 있다. 평화디딤돌은 돌아가신 이의 이름과 고향, 생년월일과 어디로 끌려가고, 어디서 돌아가셨는지의 기록을 담은 동판으로 ‘강제 징용을 잊지말자’는 의미를 새기는 활동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 2월 사뽀로와 슈마리나이에 평화디딤돌을 전하고 온 것이다. 앞으로 194분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소녀상 옆에 ‘평화디딤돌’을 놓을 계획이다.

 

 

 

“아우슈비츠에 소녀상 갖다 놓자”

 역사바로세우기시민네트워크의 대표가 이런 말을 했었다. “아우슈비치에 소녀상을 갖다 놓자.” 맞는 얘기다.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들이 전쟁의 참혹성을 같이 알리면 좋지 않을까? 김운성 작가가 답한다. “유태인 재단에서 만든 박물관이 유럽과 미국 곳곳에 있지만, 우리가 소녀상을 기증하겠다고 해도 단 번에 no라 한다.” 그들만의 역사관이 있는것 같다. 유태인들은 아우슈비츠와 관련해서 엄청난 재정적 물리적 지원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 박물관 기념관을 짓고 교육과 홍보를 하고 있다. 수많은 소설과 에세이, 칼럼, 영화가 아우슈비치를 말하고 있다. 단지 유태인만이 아니다.

 

집집마다 ‘작은 소녀상’ , 역사를 잊지 말아야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 역사 지우기

 일본도 똑같이 평화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지원하고 있다. 독일 폭격을 받은 영국 마을에, 일본인이 돈을 들여서 원자폭탄 피폭 상징물로 ‘평화의 불꽃’을 만들어 비치하였다 한다. 이런 활동으로 일본도 피해자였다는 이미지를 심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일제의 침략을 받은 27개국을 대상으로 아시아평화기금과 같은 후원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평화 기금, 연구소 기금, 국제단체 기금 등을 많이 낼 뿐 아니라, 자연산림 회복, 사막화 방지 나무심기 운동, 학교와 병원도 지어주고 있다. 국제 사법재판소, 우리나라 시민단체 등에도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지원받은 나라나 기구에서는 일본에 대해 전쟁범죄 얘기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일본은 조직적 체계적 지속적으로 자신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역사 지우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일본은 선진국이며, 돈도 많고 예의바른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일본의 의도를 정면으로 깨는 것이 바로 ‘난징대학살’과 ‘종군 위안부’ 문제이다.” 김운성 작가가 본질을 짚어주는 설명을 했다.

 

 그러니,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 얼마나 눈에 가시겠는가?

 

 

20년 되어도 진척없는 위안부 문제…소녀상의 탄생

 김운성씨는 우연히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지나가다 충격을 먹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종군 위안부 문제를 폭로하고 수요집회를 했다는 것을 알았으나 20년이 다 되도록 해결된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먹은 것이다. 그래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찾아가서 무엇을 도와주었으면 하냐고 물었더니 비석을 세워달라고 했다.

 

 당시 “챙피한 역사니까 말하지 말자”고 말리러 왔다가 할머니들 얘기를 듣고 완전히 돌아서서 강력한 지지자가 된 전주에 사는 김판수 할아버지가 비석을 만들자고 정대협에 제안하여 홍보하고 있었다. 이를 알고 일본정부가 ‘비석 세우지 마라’고 압박을 해왔다.

 

 김운성 작가는 “일본이 압박하면 세우기 힘들겠다.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된 것을 세워놓고, 치우면 계속 다시 갖다놓자.”고 생각하면서 할머니 조각상을 세우자고 마음 먹었다. 꾸짖고 응징하고 처벌하고 사과를 받아내야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 김서경 작가는 조그만 소녀상을 만들었다. 할머니가 끌려갔을 때 소녀였으므로 소녀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것도 커다랗고 높은 조각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조형물로 만들었다. 외치거나 저항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으면 했다. 그것이 김서경 작가의 마음이었다. 그것이 모두의 소녀상이 되었다.

 

 

세계 곳곳에 소녀상 세우자! 올해만 50여곳

 지금 소녀상은 모두 30점이다. 한국에 27개가 있고, 미국 2곳, 캐나다 1곳에 소녀상이 있다.

 

 며칠 후 3월 8일에 올해 처음으로 아산에 소녀상이 세워진다. 아산시민건립추진위가 만들어져서 모금 활동을 했다. 동작구와 구로구에서도 시민들이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화성시와 시흥시 성북구에서는 자매·우호도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자는 건립추진위를 만들었다. 올해 소녀상을 세우겠다고 계획을 세운 지방자치단체만해도 50여 곳에 이른다.

 

 지금까지 소녀상은 6가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으로 김서경 작가는 거제도에 있는 ‘서있는 소녀상’을 들었다. “당시(2014년)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없애려(해석 개헌) 했어요. 미국 글렌데일시의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일본인 10만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고요. 더구나 교학사 교과서에 할머니가 일본군을 따라다녔다는 내용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듣고 앉아있을 수 없었죠. 그래서 소녀상이 일본 앞바다를 보고 서있게 된 거예요.”

 

예술이 정의에 불을 지핀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을 세운 이후 집회 양상이 바뀌었다. 소녀상을 모티브로 음악이 만들어지고, 공연이 열리고, 그림과 글이 쏟아져나왔다. 예술이 정의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불꽃이 일면서 할머니들은 외롭지 않게 되었다. 내 마음이 어떤 상징으로 표현되면 이제 그 마음은 곧 모두의 것으로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김서경 작가가 말했다. “소녀상은 결코 죽지 않아요.” 맞다. 할머니들이 더 돌아가시기 전에 해결해야겠지만, 할머니들이 돌아가신다고 위안부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소녀상은 친일인명사전처럼 국민들 기금으로 만들었다. 근래에 개봉한 ‘귀향’도 7만여 국민이 성금을 모아 만든 영화이다. 그래서 소녀상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이것을 한일외교장관이 철거한다고 합의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로 ‘정의기억재단’기금 마련

 지난 1월 14일부터 정대협 주도로 400여 단체와 개인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손잡는 정의기억재단’을 만들었다. 일본 정부가 지원을 약속한 10억엔(약 100억원)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재단을 세워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취지다. 김운성 김서경 작가 또한 소녀상 미니어처를 통해 펀딩에 나섰다.


 김운성 작가는 “작은 소녀상을 만들어 널리 알리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소녀상 제작에 비용이 많이 들어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2월28일 한일 ‘위안부’합의 이후 소녀상에 관심을 가진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작은소녀상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10cm, 20cm, 30cm의 작은 소녀상은 김서경 김운성 부부작가의 소녀상을 기본 디자인으로 3D업체 글룩과 그레이포인트에서 금형작업을 하고, 텀블벅이 펀딩을 맡아 협업으로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제작비용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익이 정의재단의 기금으로 쓰여질 계획이다.

 

 김 작가 부부는 소녀상 제작의 의미를 전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 작은 소녀상을 각국 유엔대표와 여성인권회복단체 및 전쟁피해 국가의 시민단체에도 보낼 계획이다.

 

소녀상이 ‘베트남 피에타’ ‘평화디딤돌’로

 부부 작가는 일본에 다녀오면서 소녀상을 일본에 꼭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일본국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참배 반대, 핵반대, 천황제 폐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전시 뿐만 아니라 언론 방송에서도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다. 오죽하면 작년 1월에 이런 주제의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시를 못한 작품들이 모여 ‘표현과 부자유전’이라는 전시를 따로 했겠는가?

 

 이번 12.28협정으로 일본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가 대체로 해결된 것으로 보고 있고 더구나 일본 시민운동 활동가들 중에도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 협정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부했고, 외교부직원들이 할머니를 찾아 설득하려 했지만 사실상 3명의 할머니를 만났을 뿐이었다는 실상을 전했다. 더구나 박유하씨의 ‘제국의 위안부’라는 소설로 중간지대에 있던 사람이 우파로 넘어간 상황이어서 더더욱 일본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김서경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평화행동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소녀상에 이어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사죄하는 ‘베트남 피에타’를 제작했다. 김운성 작가는 “재일교포인 자이니치가 겪은 차별은 이루 말 할 수 없어요. 모두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된 사람들의 자손입니다.”라며 그들의 아픔을 닦아주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예술로 승화시킨 김서경 김운성 두 작가는 작가라는 틀을 뛰어넘어 평화운동가로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글 임현주 사진 · 김운성 작가 제공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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